다음 세대가 묻다
“보는 것에도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가요?”
엄정순이 답하다
“나와 다름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낄 때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본 것들이 결국 나이기 때문입니다.”
각계 명사에게 ‘다음 세대에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담는 ‘아우름 시리즈’의 서른 번째 주제는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별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던 ‘보다’라는 것에 대해 시각장애 아동의 미술 수업이라는 낯선 상황을 통해 돌아본다.
안 보이는 아이들의 미술 수업은 질문 수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반짝인다는 건 어떤 거예요? 선생님은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누구 보고는 예쁘다고 하고 누구는 밉다고 하는데 왜 그런 거예요? 바람도 찍을 수 있나요? 동물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나요?
보이지 않아서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들의 질문은 타성에 굳어 있던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거세게 뒤흔들며, 너무나 익숙해서 조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본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본다는 것은 인식과 관계의 문제로 이어지는데, 이처럼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본 것 혹은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오래된 우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다는 행위에는 편견이 깃들기 쉽다. 이처럼 우리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보려 하지 않은 것들,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living room)’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다르게 볼 수 있는 세상, 나답게 보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세상, 그러한 가능성을 인정하는 열린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저자의 질문 여행을 따라가 보자.
앞이 안 보이는 아이들과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코끼리의 만남
시각예술, 시각장애, 코끼리의 콜라보 프로젝트!
시각장애 아동들이 미술 수업을 한다? 게다가 코끼리를 실제로 만져 보고 그 느낌과 경험을 이미지로 만든다? 코끼리를 만나러 태국까지 간다?
‘코끼리 만지기’와 ‘코끼리 걷는다’로 이루어진 코끼리 프로젝트를 두고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반응부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반응, 황당하고 쓸데없는 짓이라는 부정적인 반응까지 다양하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는지?
이 모든 것은 앞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낯선 소란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과 코끼리의 만남은 보이는 세상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에게, 본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혼란과 메시지를 선사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지 장애나 미술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도대체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소란은 이 책의 저자인 한 화가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이 질문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만나 더욱 다채로운 빛을 띤다.
“질문(質問)을 한자 어원대로 풀어 보면 귀한 것(조가비)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란 뜻이라고 한다. 앞이 안 보이는 아이들과 미술 작업을 하면서 나는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고 감탄하는 이들의 보는 방식과 그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정말 좋았다. 그들의 질문은 ‘보다’의 또 다른 단계의 문을 넘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었다.”(저자 서문 중에서)
인간이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
나를 표현하고 싶은 마음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저자의 질문 여행에 동행하다 보면 한 가지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앞이 잘 보이는 사람이든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이든 뿌연 분홍색으로만 보이는 사람이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며, 그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은 종종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내가 보는 방식, 내게 익숙한 세상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
너와 내가 구별되는 것은 ‘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즉 내가 보는 풍경, 내가 보는 것들의 총합이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이해해야 어떻게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갈 것인지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Aurum)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앞 세대가 다음 세대를 껴안는 사랑과 지혜를 담습니다.
엄정순
이화여대 미대 서양화과와 독일 뮌헨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3회의 개인전을 하였고 다수의 국내외 그룹전에 참가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회화 작업과 ‘우리들의 눈’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 ‘보다’에 관한 질문을 중심에 두고 전시, 미술교육, 출판 활동을 하는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의 설립자이며 디렉터로 1996년부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다양한 시각의 소유자들과 협업하면서 ‘다르게 보기(Another way of seeing)’의 세계를 제안한다.
작가의 코끼리 프로젝트 안에는 ‘코끼리 걷는다(Elephant Walk)’와 ‘코끼리 만지기(Touching an elephant)’가 있으며, 두 프로젝트는 한 뿌리에서 나와 각기 다른 열매를 맺으며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북촌에 위치한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2018년 1월 18일부터 2월 14일까지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출간 기념 전시가 열린다. (문의: 02-733-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