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으로 분장한 인간들의 철학 분투기
《철학을 하지 않는 닭》은 닭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인간들의 이야기다. 교촌2호, 교촌3호 등 닭들이 내뱉는 촌철살인의 말이나 생각들은 우리들이 삶에서 겪는 일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때마다 ‘아,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또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들에게 철학하는 삶을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읽으며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면 그 생각의 바다에 빠질 것을, 그 생각을 붙잡을 것을, 그리고 뭔가를 체험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재미는 기본이고, 읽으면서 지뢰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미소와 한숨은 덤이다.
우리는 어쩌면 교촌3호처럼 살고 있지 않을까?
철학을 하지 않는 닭 교촌3호는 지금보다 더 많은 양의 물과 모이를 얻기 위해 잠을 잘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연구한다.
“이건 분명히 어제 내가 닭장의 오른편으로 치우쳐서 잤기 때문일 거야. 정확히 한가운데에서 자지 않을 거라면 닭장이 왜 필요하겠어? 내가 정확히 닭장 한가운데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잔다면 틀림없이 다른 어떤 날보다도 더 많은 양의 모이가 주어질 거야!”
세상이 잠자는 일과 마시는 물과 먹는 모이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또 닭장 밖의 세상도 있으며 모이와 물을 줄 때마다 나타나는 인간이란 동물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교촌3호의 신념은 잠자는 일과 물과 모이에만 집중되어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에만 집착한다. 그것이 바람직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교촌2호처럼 닭장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전에 살던 닭장과 지금 사는 닭장 안에서의 상식이 다르다는 사실을 눈치 챈 교촌2호는 닭장 안의 상식이란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닭장 안에서의 상식이란 인간이 닭을 잡아먹기 위해 마련해 놓은 것일 뿐이란 걸 알아 버린 교촌2호는 상식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상식대로만 산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망과 의지에 따라 사는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욕망과 의지에 따라 살게 된다.”
닭장을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교촌2호는 마침내 닭장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귀엽고 밝은 병아리들을 보는 순간, 병아리들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순간 자신의 삶이 자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병아리들의 삶과도 관계가 있음을, 만약 자기마저 아무런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닭장 안에서 편하게 사는 삶을 선택한다면 현실은 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최고란 무엇일까?
닭장을 나온 닭 귀농2호는 존경하는 닭 귀농을 잃고 나서 두려움과 고독을 없애는 한편, 모든 암탉들이 매력을 느끼는 최고의 닭이 되려 쉬지 않고 달리기 연습을 한다. ‘나는 뭔가가 되겠다.’는 말을 마음속으로 입버릇처럼 되뇌며…….
“난 아직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꼭 뭔가가 될 거야. 최고의 닭처럼 뭔가 의미 있는 존재 말이야.”
하지만 이미 최고의 닭이 된 자유113호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1등을 하기 전보다 더 두렵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자기가 없는 삶’이란 ‘그릇에 담긴 물처럼 그릇의 모양에 따라 그 모양이 결정되어지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고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행동하고, 자기의 그런 행동들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두려움을 벗어던진 귀농2호
동닭과 서닭으로 나뉘어 서로 헐뜯으며 싸우는 닭들의 땅에서 귀농2호의 아이들도 믿음과 신념에 따라 각각 동닭과 서닭이 된다. 하지만 그 싸움의 와중에서 아이 하나를 잃은 그는 닭들의 어리석음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닭이란 무엇인지, 닭들이 현명해질 방법은 없는지’ 알아내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별 신통한 소득 없이 돌아온 귀농2호는 아내 자유201호마저 잃고 동굴 속으로 숨어들어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마지막을 보내다가 몽롱함 속에서 들은 귀농의 말을 생각해 낸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느끼고 겸손한 닭이 되는 것이지. 우리는 항상 모르는 게 있다네. 우리는 그저 유한한 닭이기 때문이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말이야.”
마침내 귀농2호는 과거의 경험이나 남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다시 상처를 입지 않으려 계획을 세우고 방법을 찾으며 미래에 두려움을 갖게 되는 현실을 인식한다. 하루하루가 우리를 변하게 하면서 우리는 매일을 다른 나로, 다른 우리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의 걱정은 오늘의 내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 또는 남의 말에 의존해서 만들어낸 과거의 내가 오늘과 만나 만드는 것임을, 그렇게 한 선택들이 미래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바깥세상에서 아름답거나 귀하거나 흉한 어떤 닭들을 만난다 해도 무엇을 말할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게 된 귀농2호는 당당하게 동굴을 나선다.
닭띠 전직 과학자. 포항공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통계물리학적 방법을 통해 인공지능의 학습을 분석하는 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에는 관심을 인간의 뇌로 돌려 이스라엘의 히부르대학, 미국의 뉴욕대학, 일본의 리켄연구소에서 정보이론으로 뇌신호를 분석하거나 시각신경에 대한 수학적 모델을 개발하는 일을 했다.
애초에 실용적 이유보다는 철학적 이유로 과학을 좋아했지만, 대학 이후 글쓰기를 자기와 대화하는 방법으로 삼는 과정에서 보다 본격적으로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든가, ‘어떻게 사는 것이 합리적으로 사는 것인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