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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취(竹醉) 1

음력 5월 13일은 죽취일(竹醉日)이라 하여 특별히 대를 옮겨 심는 날이다. 이날은 대가 취해서 어미 대에서 새끼 대를 잘라 내도 어미가 새끼를 잃는 슬픔을 알지 못하고, 자식 또한 어미 곁을 떠나 멀리 옮겨 심어도 어미 곁을 떠나는 아픔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남겨진 어미 대에서는 다시 새끼 대가 자라고, 또다시 죽취일이 돌아오고. 하지만 취함이 희미해진 뒤에는 어찌 되는 걸까? 품고 있던 것이 없어졌는데, 잠시 취했다 깨어났다 하나,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허전함을 영원히 모를 수 있을까? 떼어 내는 순간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해서 자식을 잃고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 두 번 다시 취하지 못하는 어미 대나무가 있습니다. 자식을 떼어 낸 자리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가 바..
음력 5월 13일은 죽취일(竹醉日)이라 하여 특별히 대를 옮겨 심는 날이다.
이날은 대가 취해서 어미 대에서 새끼 대를 잘라 내도 어미가 새끼를 잃는 슬픔을 알지 못하고,
자식 또한 어미 곁을 떠나 멀리 옮겨 심어도 어미 곁을 떠나는 아픔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게 남겨진 어미 대에서는 다시 새끼 대가 자라고, 또다시 죽취일이 돌아오고.

하지만 취함이 희미해진 뒤에는 어찌 되는 걸까?

품고 있던 것이 없어졌는데, 잠시 취했다 깨어났다 하나,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허전함을 영원히 모를 수 있을까? 떼어 내는 순간의 아픔을 알지 못한다 해서 자식을 잃고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을까?

여기 두 번 다시 취하지 못하는 어미 대나무가 있습니다. 자식을 떼어 낸 자리에서 흘러내리는 핏줄기가 바닥을 적시고, 뿌리에까지 스며들어, 다시금 온몸을 타고 돌아나가, 푸른 대가 아닌 피처럼 붉은 죽이 되는 것조차 알지 못할 만큼 큰 슬픔에 몸부림치는 어미 대나무가.



<본문 중에서>

몸을 빼려 애쓰지만, 굳게 갇힌 팔 안에서 뱅뱅 돌다가는 끝내 바들거리며 어깨를 떠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사내는 다 늑대라는 말을 이 아이한테 해준 사람이 있었을까.
“비명을 질러야지, 이럴 땐.”
흡족한 목 울림을 감추고 낮게 속삭이자, 흠칫 숨을 들이마시느라 흰 블라우스 아래의 작은 가슴이 들썩인다.
대책 없을 만큼 순진하고 물정모르는 아이. 그 틈새를 비집고 비열한 주인남자가 무슨 짓을 더 하고 싶어 하는지, 이 아이는 알고나 있을까.

솔직히 ‘주인’이라는 단어도 적당하진 않았다. ‘주인집 남자’ 정도면 모를까. 하지만, 어둑하고 고요한 서재 안에서만큼은 이 작고 여린 아이의 절대적인 주인이 되고 싶었다. 애완동물 따위의 개념이 아니었다. 내 것. 내 사람. 내 여자!
자기 스스로도 왜 이 아이만 보면 이렇게 이성이나 여타의 지성은 모두 저버린 채 그저 맹목적인 감정만이 솟구치는지 알 수 없었다. 이후에 벌어질 상황이라든가, 혹은 이 아이가 겪게 될지 모를 감정적인 혼란에 관한 것은 이미 그의 염두를 벗어나 있었다. 그 끝이 어딘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멈출 수 없으니 무모하게 나아갈 뿐.

퍼뜩 시선을 들었던 아이가 더욱 깊게 수그리며 손목을 잡아 빼려 힘을 주지만 놔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잠시 마주쳤던 시선에 잔뜩 고인 두려움과 충격을 목도하고도, 뻔뻔스런 주인은, 여전히 오금 뒤를 잡고 있던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손에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자잘한 주름의 안쪽에서 접히는 피부 특유의 촉촉한 부드러움이 느껴져, 손바닥까지 펴 밀어붙였다. 팔딱거리는 맥박도 전해졌다.
심장에서 내려왔을 그 생명을 기운이 견딜 수 없이 친밀하고 감사하게 느껴졌다.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결코 놓지 못할 것이다. 순간적인 음심인지, 아니면 그 보다 더 깊이, 태초부터 결정된 운명까지 가 닿은 인연인지 그조차도 판단 할 수 없는 대상인 박 동희를, 아니, 지금 당장 저 문을 나가면 곧장 울음을 터뜨릴지 모를 꼬맹이 박 동희를 붙들고 있으면서 그는 계속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수가(정유석)

현재 piuri.net에서

후작과 나
연재 중.

motto는 ‘성실한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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